한 세대 이전만 해도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매우 이상한 행동이었음에 분명하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노년 세대만 하더라도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혼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아니, 이혼이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하면서 평생을 살기도 했다. 이전 세대에게 짝을 맺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하거나 종교적 ‘출가’를 하지 않는 이상 낯선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짝을 찾았다. 짝을 찾아 혼인관계를 맺을 때 개인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결정권은 개인에게 없었다. 결혼에 대한 결정권이 없으면, 결혼에 대한 요즘과 같은 기대도 없다. 부부간의 금슬은 요행의 영역이나 다를 바 없었다. 서로에 대한 정보도 없고 서로의 감정에 대한 확인도 없는 상태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마침 둘의 성격이 잘 맞는다면 대단한 행운이다.
잉꼬부부가 되는 행운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불행하다 할 수는 없다. 한 쌍의 원앙을 닮은 좋은 행운을 지닌 부부도 가끔 탄생했지만 그 요행에서 벗어난 사람은 자신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불행을 느끼지는 않았다. 금슬이 좋지 못하다면 그런 행운이 비껴난 것이지 불행하다는 뜻은 아닐테니까.
섹스라는 것이 결혼관계를 맺은 부부 사이에서만 용인이 되는 사회가 있다. 흔히 보수적인 성문화를 지닌 나라에서 그런 태도가 등장한다. 이런 사회에서 섹스란 공식적으로 부부 사이의 관계에서만 존재하는 것 혹은 용인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부부 관계 이외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섹스 행위는 금지의 대상이고 도덕적 타락의 표시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며, 매우 음습한 영역의 일로 간주된다. 심지어 ‘섹스’를 돌려서 말할 때 ‘부부 관계’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부모는 아직 혼인관계에 접어들지 못한 자녀의 섹스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민감하다.
보수적인 공식 성문화를 가진 나라에서는 섹스는 부부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부 사이가 전제 되지 않는 섹스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비난이 쏟아진다. 간통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이유도, 간통이 부부관계 이외의 관계에서 발생한 섹스이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의심에는 늘 보수적 가족주의 세계관이 따라다닌다. 이 틀에 따라 세상을 보면 독신이란 조건은 도덕적인 성관계가 허용되지 않은 조건에 처한 사람이다. 즉 보수적 가족주의자는 독신인 사람이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고 성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조건 속에 있다고 판단하기에, 성적 욕구 불만때문에 언제든지 성범죄자가 될 잠재성을 가진 존재로 취급한다. 하지만 그런 보수적 가족주의관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나 조선 유교사회에서는 타당했을지 모르나, 피임이 일반화되고 여성이 경제적 독립성을 지닐 수 있는 사회에서는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
여성이 단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남성에게 의지할 필요는 없어졌다. 또한 남성 역시 전적으로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피부양자로서의 지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결혼이라는 도덕적으로 용인되는 사회적 관계에서만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순결’의 이데올로기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이미 끝난 시대다.
이 시대는 섹슈얼리티가 결혼이라는 제도와 결합해 있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다. 인구 재생산의 목적에서 벗어나서, 그 자체가 탐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섹스는 점차 평범해지고 있다. 섹스는 점점 더 엄숙하고 단단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부드럽고 탄력적인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앤서니 기든스가 만든 매우 적절한 표현을 따르자면, 우리 시대의 섹스는 생식이라는 생물학적 의미를 상실한 플라스틱과 같은 성격을 지닌 대상으로 변했다. 순결을 잃었다고 억지로 4인용 테이블로 옮겨갈 필요도 없고 혼인빙자간음죄는 박물관에서나 전시되어야 할 정도로 섹스가 결혼의 전제조건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섹스 또한 로맨스만큼이나 패스트해진 시대에, 1인용 테이블에는 밤마다 욕정을 참지 못해 허벅지를 은장도로 찌르는 수절과부는 더 이상 앉아 있지 않다.1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는 배드보이, 배드걸이 성적으로 타락한 인간 말종이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쿨한 인간 유형으로 취급되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중세의 황혼기에 도시가 정치적 자유라는 신선한 공기를 인류에게 선물했다면,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메트로폴리스는 결혼하지 않으면서도 연애와 섹스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다.